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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09.19 시스템 운영관리, 잘 버리는 것도 일이다.
IT일반2014. 9. 19. 17:27

늘어나는 이삿짐

철새처럼 직장을 자주 옮겨 다니지 않고 한 직장에서 오랜 기간 있다 보니 개인 짐이 알게 모르게 많이 쌓여버렸다. 엊그제만 해도 라면박스 두 개 정도는 되는 크기의 포장용 박스 안에 잔뜩 들어가있던 서류며 책이며 업무바인더 등을 죄다 헤집어가며 살릴 건 살리고 버릴 건 과감히 분리 수거했다. 큰 박스가 총 3개가 있었는데, 겨우 두 박스는 처분했고, 마지막 남은 박스 하나가 사무실 내 책상 곁에 웅크리고 있는데, 쳐다볼 때마다 압박감이 장난이 아니다.

계기가 없었다면 정리하지도 않은 채 잊어먹고 살고 있었을 텐데, 짐이 들어있는 박스가 보관되어 있는 창고를 청소해야 하니 짐을 찾아가지 않으면 전부 버리겠다는 청소 담당자의 으름장에 겁먹고 박스들을 내 책상 앞에 꾸역꾸역 갖다 놓은 것에서부터 발단된 일이다. 아마도 청소가 아니었다면, 부서 이동 등으로 사무실을 옮길 때가 되어야 이런 기회가 찾아왔을 테지만 말이다.

날이 가면 갈수록 애물단지 짐이 늘어나는 주요 원인은 아마도 '놔두면 언젠가는 써먹을 곳이 있겠지'라는 생각이 영향을 주지 않았나 싶다. 사실 버리면서도 꽤 독한 마음을 먹어야 할 순간이 수시로 있었는데, 머리를 차갑게 하고 이성적으로 생각해보면, 꽤 오랜 시간이 흘러 나중이 되더라도 써먹어야 할 순간에 과연 써먹을 만한 가치를 계속 가지고 있을까 하는 판단에 통과하는 경우는 사실 많지 않다.

시스템 관리에도 이삿짐은 있다

지난주에 사내에서 굴러다니던 동영상 스트리밍 시스템 하나를 치우는 결재를 상신했다. 2008년도에 도입했던 장비와 소프트웨어가 세트로 구성된 시스템인데, 구입금액만 8천만 원을 상회하는 엄청 비싼 시스템이었는데, 결국 한두 해도 제대로 못써먹고 애물단지로 전락해버린 시스템이다.

어떻게든 살려보려고 이모저모 살펴봤지만, 기본적으로 ActiveX 기반으로 구축됐고, 실시간 촬영 및 송출장비가 Windows XP 기반의 맞춤형 장비로 되어 있어서 요새 같은 시절에 뭘 어찌 건드려볼 만한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참고로, 현재 내가 근무하는 이곳의 업무시스템은 타도 ActiveX를 목표로 멀티 플랫폼, 멀티 브라우저를 지향하는 웹 표준 방식으로 구현되어 있어서, 시대를 역행하는 짓이 바람직하지 않게 된 배경도 있다.

하드웨어를 포함한 유형 시스템 만의 문제는 아니다. 업무규칙을 구현한 응용프로그램 같은 소프트웨어 구성요소 또한 시간이 지나면서 쓰지 않고 방치된 경우를 흔하게 접할 수 있다. 실제로 내 주변에서 겪었거나 현재진행형으로 겪고 있는 운영환경을 살펴보면 원활하고 효율적인 운영관리를 위해 정리할 필요가 있는 시스템 관리상의 구성요소들은 몇 가지가 있다.

하드웨어 및 인프라 시스템

위에서 설명한 동영상 스트리밍 서버 말고도 사실 내가 근무하는 부서에서 관리하는 시스템 중에 노후화 되어 활용도가 극히 떨어지는 시스템이 있다. 주로 용도에 더 이상 부합되지 못할 정도로 낙후되어 단순한 업그레이드나 부품교체 만으로는 감당이 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일반적인 시설이나 장비에 있어서도 각 회사나 조직은 이런 경우를 대비하여 내구년수나 감가상각을 관리하게 된다. 사실 일반적인 장비들에 비해 정보관련 기기들의 수명주기는 상당히 짧게 마련이다.

보통 관리를 평소에 잘 한 경우라면 실제 내구년수보다 훨씬 장기간 운영이 가능할 수도 있으나, 대체로 못써먹겠다고 판단을 하는 근거는 따로 있다. 시대가 바뀌어 표준이나 규격과 멀어진 펌웨어(혹은 운영체제 등)의 노후화로 지속적 지원이 불가능해 지는 경우도 더러 있다.

비싼 돈을 들여서 장만한 시스템일수록, 치우려고 할 때 최종 의사결정을 경영진에게서 얻어내는 과정에서 주요 걸림돌은 대안의 제시다. 손쉽게 추가로 돈을 들여서 새로운 시스템으로 교체하는 것을 허락 받는다면 제일 행복한 경우라고 볼 수 있겠으나, 보통 경영진은 이렇게 들어가는 돈을 제일 탐탁잖게 여기기 마련이다. 그냥 대형 폐기물 스티커 가격이 더럽게 비싼 경우라고 이해하고 적절히 행동하는 것이 필요하다.

데이터베이스

내가 직장에 몸담고 있는 동안 업무시스템에 사용되는 데이터베이스는 총 두 번에 걸쳐서 전면 재설계와 재 구축을 동반한 개편이 있었다. 초창기의 잔재는 이제 거의 찾아보기 힘들지만, 두 번째 데이터 모델의 잔재들은 아직도 DBMS에 담겨있는 테이블 목록에서 심심찮게 발견되곤 한다.

쓰지 않는 테이블이 남아있어도 당장 현재 운영 중인 시스템에 영향을 끼치진 않는다. 그래서인지 많은 사람들이 '굳이 놔둬도 큰 문제가 없는데 나중에 필요할 상황이 혹시 생기면 어쩌려고 함부로 지우려고 하느냐'고 말하며 무사안일을 추구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데이터 품질관리를 철저히 하기 위해 각종 스키마와 데이터 모델을 표현하는 문서화를 현행화하기 위해 팔을 걷어붙이자마자 당면하는 과제는 쓰지도 않는 무수히 많은 쓰레기 더미를 마주하게 되는 상황에 맞닥뜨리는 것이다.

꼭 거창한 이유가 아니더라도, DB 접속 프로그램으로 테이블 목록에서 나한테 필요한 테이블을 찾기 위해 쓰지도 않을 테이블들의 산더미 속에서 대상 테이블을 매번 찾아내는데 쌓이는 스트레스 또한 티끌 모아 태산인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참고할 점은, 비단 테이블뿐 아니라 DBMS에서 관리되는 요소인 뷰(View)와 트리거 및 내장 프로그램 객체(프로시저 등) 또한 테이블이 갖는 똑 같은 문제를 가지고 있다.

응용 프로그램

대규모 신규구축 사업 등을 통해 한꺼번에 개발을 하는 경우에는 업무용 응용프로그램 또한 각 단위 시스템 별로 해당 관련 업무부서의 과잉의욕을 충족시키려고 별의별 메뉴와 화면, 기능들을 잔뜩 만들기 쉽다. 하지만 구축단계가 끝나고 운영관리 단계로 이행되면서 기존 예상과는 다르게 업무환경이 변했거나 여러 가지 이유로 구축 시 만들었던 일부 응용 프로그램들은 찬밥신세가 되기 마련이다.

우리 회사에서도 프로그램 소스를 관리하는 저장소를 뒤져보면 버전 1.0에서 단 한번도 수정은커녕 활용되지도 않고 고이 모셔져 있는 소스들을 꽤 많이 발견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삭제도 하지 않고 계속 받들어 모시는 이유는 역시 '언젠가는 필요할지 몰라서'라는 이유 때문이다. 내 책상 옆에 모셔져 있는 짐 꾸러미 박스가 생각난다.

제일 좋은 것은 새로운 버전을 만들거나 더 이상 활용도가 없어졌을 때 등, 평소에 미리미리 적시에 판단해서 정리를 했어야 하는데, 무에 그리 바쁜지 '나중에 정리해야지' 하며 방치하고 있다가 결국 꾸역꾸역 쌓인 결과물들인 셈이다.

데이터베이스와 더불어 응용 프로그램들은 정리를 할 때에는 반드시 백업 대책을 잘 마련하고 시행해야 한다. 아무 대책도 없이 무작정 삭제해버린 후에 정말로 그 '만약'이라는 사태가 벌어져서 땅을 치고 후회하지 않으려면 말이다.

의외의 결론

경영진의 입장에서는 지금까지 언급한 유형과 무형의 자원에 더하여 인적자원 또한 고려대상이 될 수도 있다. 기술의 시류를 타지 못하고 퇴물이 되어버린 유지관리 업무 종사자들의 이야기다. 나 또한 언젠간 퇴물이 될 위험에서 언제까지나 열외일 수는 없는 노릇이니 은근히 겁나는 의외의 결론에 도달해 버렸다.

하드웨어는 계속 써먹기 위해서 지속적으로 업그레이드를 하고 부품을 교체한다. 소프트웨어와 응용 프로그램은 업무환경과 표준규약의 변화에 맞춰서 시시때때로 수정보완과 패치를 하여 지속적인 운영을 유지해 나간다. 치킨 집 차릴 목돈을 모아놓지 않았다면 끊임없이 공부해야 한다는 슬픈 이야기다.

Posted by nextream